본문 바로가기

성경 말씀/ㅅ

쓰임 받는 삶

사도행전 8장 26 ~31절

 

 세상에는 귀하게 쓰임 받는 금이나 은그릇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무그릇이나 질그릇도 있다.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자면  우리의 기준으로 우리는 모두 금이나 은그릇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그릇의 종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따라서 목적에 맞게 여러 형태의 그릇들을 만드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중요한 점은 쓰임 받는 그릇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그릇들을 사용하실까?

 

1.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

 

스테반 집사의 순교 이후에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어 모든 사도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중에 빌립이라는 집사는 사마리아로 피신을 했다. 도망자의 신세임에도 그는 사마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증거 했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런 중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말씀하신다.

26절)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빌립잡사가 순종하여 가서 보니 에티오피아 내시가 있었다.

27절) 일어나 가서 보니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 내시는 이방사람이었지만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먼 이국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왔었던 것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마차를 타더라도 적어도 한 달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이고 또 여러 위협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곳에 온 것을 통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예배를 간절히 사모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이처럼 예배를 사모하고 아버지를 만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다. 또 주의 은혜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다윗을 보자. 다윗은 정치적 배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왕이 될만한 조건이나 자격도 없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목동인 다윗을 불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보셨기 때문이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의 고백이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주의 은혜에 대한,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있는가? 습과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한다면, 예배의 사모함이 회복되어야 한다.

 

2.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

 

28절)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에티오피아 내시는 놀랍게도 개인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개인성경은 구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매우 비싸 유대인들조차도 가지기 힘들었다. 또한 당시의 성경은 책의 형태가 아니라 두루마리 형태라 읽기도 쉽지 않았다. 더욱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내시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율법에 따라 성전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내시의 입장에서 얼마나 실망스럽고 한편으로는 짜증이 났을만한 상황인가? 그럼에도 그가 흔들리는 수레 위에서 성경을 보고 있었다.

30절)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정확히는 빌립집사가 들을 정도로 성경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주의 은혜를, 복음을 사모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예배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식어있을 때가 많다. 일주일 동안 살면서 말씀 한 구절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복 받기는 원하는 우리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를 하나님이 가까이 하심을 기억하자. 은혜에 대한, 말씀에 대한 그리고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3.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26절)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사자가 말씀하신 길은 광야길은 걷기도 힘들뿐더러 100km가 넘는 먼 거리였다. 또한 빌립집사 입장에서 더 순종하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5~8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빌립집사의 사역의 현장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사역을 중단하고 아무도 없는 광야길로 며칠을 가라고 말씀하시니 순종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빌립집사는 순종하였고 그 결과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상종하지 않았다. 그런데 빌립집사는 끝까지 순종하여 성경을 읽는 내시에게 다가가 말씀을 깨닫는지 물어본다.

30절)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내시는 깨달을 수 없었다. 그가 읽은 내용은 아래와 같다.

32~33절)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물어본다. 빌립집사가 그가 예수임을 가르쳐주고 복음을 전한다.

35절)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내시는 복음을 받아들였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에티오피아로 돌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며 복음을 증거 하여 후에 에티오피아가 기독교 국가로 공인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세이고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우링 인생의 기준은 하나님이시고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