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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ㅇ

은혜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6장 14 ~20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값 없이 주시는 사랑, 즉 은혜를 받아 하루하루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시기 위함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마음의 감동이 있거나 주님께 은혜받은 느낌이 들어도 성장하거나 변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허비되고 마는 것이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과 같이 그저 기분 좋은 감정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본문의 헤롯왕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이렇게 말한다.

마가복음 6: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헤롯은 세례요한이 살아 있을 때,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통해서 감동도 있었고 마음의 찔림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보고서 세례요한을 떠올리며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거기까지였다. 그는 더 이상 은혜에 대한 반응이 없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합당한 반응을 하고 있는가? 성숙되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보자.

 

 

1. 은혜 소비자

 

마가복음 6:17~18)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당시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의 잘못된 행동을 질책했다. 헤롯이 이에 분노하여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헤롯보다 더 분노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헤롯의 동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였다. 그녀가 분노한 이유는 세례요한에 대한 헤롯의 태도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헤롯은 세례요한이 의로운 사람인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보호해 주려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당시 사람들이 선지자로 여기는 세례요한을 헤롯이 죽이게 되면 그의 정치적인 입지가 좁아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는 함부로 세례요한을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헤롯은 결국 세례요한을 죽이고 말았다. 그의 생일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의 춤을 보고 기뻐하여 그녀가 원하는 것을 묻게 되는데, 살로메는 헤로디아의 원대로 세례요한의 머리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 요구를 듣고 헤롯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 때문에 자기의 체면 때문에 결국 딸의 요구대로 세례요한을 목베어 죽이고 말았다.

마가복음 6: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헤롯의 안타까움은 여기에 끝나지 않는다. 

누가복음 23:11~12)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헤롯은 죄에 이끌려 세례요한을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빌라도와 함께 예수님을 죽이는 공모자가 되고 말았다.

 

헤롯은 세례요한으로부터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도 만났던 사람이었다. 예수님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고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받았지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천천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결국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말씀에 이끌려 살기보다는 죄에 이끌려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다윗은 선한 왕이었지만, 한때 그가 교만하게 되어 자기 수하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녀의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어 죽게 만들었다. 다윗도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그저 소비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은혜에 반응하는 반응자가 되어야 한다. 주신 은혜를 느끼고 이에 반응하여 삶에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변화되어야 한다.

 

 

2. 은혜 전달자

 

헤롯은 죄에 끌려가는 삶을 살다가 결국 더 큰 죄를 짓는 자리에 서고 말았다. 반면에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헤롯왕의 잘못을 말했고 안타깝게도 그 결과 죽고 말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다. 좀 융통성 있게 돌려서 잘 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마태복음 3: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그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가 투옥됨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었고, 그의 죽음은 예수님의 사역이 어떻게 끝날 지를 보여주는 표지였으며 예수님께서 당하실 죽음과 고난에 대한 예비였다. 다시 말해, 그는 예수님이 가실 길을 묵묵히 먼저 걸어간 사람이었다. 그런 세례요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주님이 아시고 인정하시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그 길을 걸어가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사역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은혜받은 사람은 때로는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길을 걸어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목숨을 내놓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 또한 은혜받은 것으로 인해서 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며 은혜를 지키면서 은혜의 전달자로 살아갔다.

 

베드로전서 4:12~13) 사랑하는 자 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의 권면처럼, 우리 앞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고 또 그 고난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쁨으로 준비하는 과정이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게 된다. 자신을 내려놓으면서 나의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참된 은혜의 전달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https://youtu.be/n_iAc6tkU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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