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32절 ~ 44절
동일한 고난 앞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불평 불만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관점의 차이가 이런 반응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내 관점이 고난에 집중되어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는지에 따라 이런 차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가?
1. 너희가 주라
예수님과 제자들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께 나아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또 병도 고쳐주셨다. 날이 저물어 가니 제자들은 걱정이 되었다.
마가복음 6:35~36)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황당한 대답을 하셨다.
마가복음 6: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파송되어 복음을 증거하던 제자들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설령 돈이 있다 하더라도 음식을 구할 곳이 없었다. 제자들의 형편을 뻔히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첫 번째 이유는 제자들이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계산이었다. 이만 명이나 되는 많은 무리를 먹이려면 최소한 이백 데나리온 정도 필요할 것이라는 산술적 계산이다. 문제는 그들의 계산 그 어디에도 하나님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 그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돈이었고 그런 관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 두 정탐꾼을 살펴보자.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정탐했었지만,서로 다른 결과를 보고했다. 열 명의 정탐꾼은 "그 땅은 우리를 삼킬 것이고 우리는 그들에 비해 메뚜기와 같다"고 보고했다. 반면 나머지 두 명인 여호수와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땅을 주신다면 얼마든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이 두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가 더 설득력이 있었기에 밤새도록 울었다. 왜 그들은 울었을까? 그들의 관점에는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에서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돈과 사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문제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만이 나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관점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부분은 바로 하나님 임을 반드시 기억하자.
두 번째 이유는 제자들의 잘못된 마음 때문이다. 물론 제자들은 무리의 배고픔을 염려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과 선을 긋고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전도사역을 감당하고 돌아온 제자들은 몹시 피곤했고 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의미인가? 그들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너희의 문제이고 그들의 아픔은 너희의 책임이라는 의미이다.
마가복음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같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목자가 되어 주셨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은 이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는 것일까? 바로 이 무리는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양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왜 우리가 공동체를 위해서 돈을 써야 할까? 왜 우리가 타인들을 위해서 격려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주님의 양이고 주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5:45) ...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2. 가서 보라
마가복음 6:34)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예수님께서 무리를 먹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현재 가진 것을 찾는 것이었다. 내게 있는것,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물질이 많으면 참 좋겠고 그것을 통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초라한 떡 다섯 개와 물고리 두 마리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을 통해 놀랍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14: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왜 주님께서는 떡과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셨을까? 그 이유는 먼저 공급자가 제자들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큰 무리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마치 제자들과 성찬식을 하시는 것처럼 그들 또한 이 떡을 먹고 예수의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셨다. 주님과 친밀해 지고 그 분의 제자되어 그 분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자들과 무리는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고, 배부름으로 인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마다,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또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있는가? 혹시 배고픈 무리처럼 내 앞의 문제만 해결되면 그것에 만족하여 거기에 멈춰서 있지 않은가? 우리는 예수의 생명을 누리고 또 전달하는 통로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