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66 ~ 72절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있다. 그렇게 그가 넘어지게 된 이유와 그가 어떻게 다시 회복되고 일어서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1. 자기 확신
마가복음 14: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장담했던 베드로는 왜 무너진 것일까? 주님을 사랑하지 않아서였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일상마저 버린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무너진 이유는 그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기를 더 확신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베드로는 주님의 경고의 말씀보다 자기 자신을 훨씬 더 신뢰하고 말았다. 그의 마음이 아무리 그렇지 않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경계심을 가져야 했다. 그 결과 주님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주님을 덜 의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깨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가복음 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분주하게 살아간다. 기도하기가 쉽지 않고 예배드리기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주님을 더 신뢰하지 못하고 주님을 더 의지하기 못하고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살아간다. 그러기에 작은 일에도 넘어질 때가 많다.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정말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면 우리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나는 주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 만이 나의 능력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야 한다. 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를 위해 내가 죽어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날마다 내 명철함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자.
2. 거리 두기
마가복음 14: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무너진 또 한 가지 이유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가지 않고 몰래 주님을 따라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시선이 예수님께 고정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기에게 닥칠 위험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가복음 14: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또 베드로는 도망가지 않았지만 멀찍이 따라갔다. 이런 베드로의 어정쩡한 태도에 대해서 한 학자는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예수를 멀찍이 따라가는 것은 용기와 공포의 중간이다." 즉, 주님께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지만 위기가 오면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그런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주님에 대해서 적대적인 사람들, 하인들과 함께 동그랗게 앉아서 함께 불을 쬐고 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말이다. 그러다 들키게 되자 예수님을 부인했다.
베드로의 이런 모습을 통해서 나는 주님과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주님과 밀접하고 가까운 관계에 있는가? 아니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가까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가 주님과 어정쩡한 거리에 있다면 틀림없이 베드로처럼 시험에 들 수밖에 없고 우리가 그 시험을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가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그런 베드로가 회복이 되었다는 점이다.
마가복음 14: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누가복음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누가복음 22:60~62)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실 때, 아마도 주님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주님의 눈길은 어떤 눈길이었을까? 베드로에게 서운한 눈길이었을까? 아니면 한심한 눈길로 베드로를 바라보셨을까? 아니다. 아마도 안타까운 눈길로,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는 눈길로 베드로를 바라보셨을 것이다. 그런 주님의 눈길을 보고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돌이켜 통곡하게 된 것이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자신을 여전히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는 주님, 베드로는 그 주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했고 또 한 편으로는 너무 죄송해서 바깥으로 나가서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바라볼 때, 자신과 직면하게 된다. 그때 직면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라는 사람은 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또 주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실패하여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나의 연약함 보다 더 크신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