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장 1~7절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이다. 누구도 인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감사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도망자 모세, 기생 라합, 목동 다윗 등의 인물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고 귀하게 쓰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우리의 상황이 힘들더라고 낙심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졌을 때 그것이 정말 은혜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되었지만 사울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베드로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되었지만 가롯유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바울의 고백이다. 왜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누군가에게는 은혜가 되지 못할까? 그것은 은혜가 은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은혜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1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르비딤에 장막을 쳤다. "르비딤"은 "안식"이라는 의미의 오아시스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아시스에 물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은혜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은혜가 은혜되지 못했다.
7절)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맛사"는 "시험하다"라는 의미이고 "므리바"는 "다투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르비딤, 즉 안식의 자리가 시험과 다툼의 자리로 변하게 되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우리가 감추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려면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1. 믿음으로 불평을 그치라.
2절)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하나님이 인도하셨는데 르비딤 오아시스의 물이 말라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셔도 물이 마르는 환경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기 시작했다. 출애굽만 하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홍해를 만났고 마라의 쓴 물을 만났으며 물이 없는 오아시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불평을 넘어 모세를 죽이려 들었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고 만다.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파괴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시험했다.
2절)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7절)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죽음에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큰 시련이 닥쳐올 때,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하시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심하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생각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셨다. 홍해 사건, 마라의 쓴물 그리고 맛나를 제공하시는 기적들을 통해서 함께하심을 계속해서 증명하셨다. 그러나 물에만 집중했던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우리도 그럴 때가 많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그런 행위가 하나님 은혜를 은혜되지 못하게 한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이고 그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불평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자.
2. 다시 기도하고 다시 순종하라
4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모세는 문제를 불평거리로 삼지 않고 기도거리로 삼았다. 그런데 모세가 기도한 것이 큰 사랑이거나 백성들을 수용하는 기도가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하자. 단지 자신의 아픔에 대한 상황에 대한 하소연에 가까웠다. 우리는 위기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 바로 모세처럼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아이가 없었던 한나는 아이를 나은 브닛나에게 멸시를 받았지만, 그녀와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을 허락해 주셨다. 우리도 우리의 아픔을 하나님께 아뢰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6절)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반석을 쳐서 그들의 기갈을 해결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모세에게 반석 위에 서라고 명령하셨을까? 성경에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의미한다.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하나님께서 르비딤으로 그들을 이끄신 이유가 무엇인가? 진정한 물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의미이다. 비록 오아시스에 물이 없지만 기도하면 주시겠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어떤가? 물이 없는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의지하는가? 아니면 물이 없는 오아시스만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처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다. 설령 내 인생에서 물이 없는 오아시스를 만날지라도 하나님이 물이시고 오아시스시니 그분 앞에 서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